디자이너와 Product Market Fit.

Jiyong Ahn
9 min readDec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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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IT 영역에서만 보더라도 많은 종류의 디자이너가 생겨났다. IT 가 태동하던 시기에 Web Master(?), Web Designer를 거쳐서 UI Designer, UX Designer, Interaction Designer로 나누어 지기도 하고 그 흐름이 다시 합쳐져 Product Designe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시대에 따른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스타트업과 기업 양쪽의 이야기를 Product Market Fit(이하 PMF) 개념을 엮어서 해보려고 한다.

완벽주의 디자인

아이폰이 출시한 2007년을 기점으로 보면 전, 후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주로 멋지게 디자인한 화면들을 잘 포장하여 포트폴리오에 담아낼 수 있어야 좋은 디자이너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물론 입사, 이직뿐 아니라 업무 내적으로도 그런 디자인 패키징 능력은 꽤 중요했다고 본다. 와중에 몇몇 디자이너는 운이 좋았다면 누구나 알 만한 프로젝트를 디자인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앱 시장이 열리면서 기회가 많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PMF 검증 방식은 주로 해외의 서비스를 벤치 마크해서 될 만한 서비스를 골라서 과감하게 Waterfall로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했다. PMF를 스스로 검증하지 않아도 사례를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할까. 그랬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화면을 멋지게 만들고 사용성을 편하게 하는 일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그 때문에 이 시기의 디자이너는 장인 정신으로 제품을 빚어내는 것이 역량의 큰 부분이었다.

필자가 주니어이던 시절에는 기업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디자인이 좋아야 제품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인식하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이 시기의 디자이너들은 제품의 완성도에 집착했고 그것에 집착해야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 다른 경우는 충분히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비지니스와 디자인은 각각 별개의 영역으로 활동했다고 보는데, 이 때문에 디자인이 충분히 좋은 제품도 망했고, 디자인이 좋지 않은 제품도 성공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 디자인

디자인에서 완벽주의는 원래도 중요시 여겨지던 철학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당시 아이폰이 나오면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고통을 주기도 했다. 필자 역시도 여전히 스티브 잡스 빠(..)이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디자인 철학은 엄청난 비전과 실행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이다. 빠른 검증보다는 확고한 비전과 함께 완벽한 제품으로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었고 이것은 애플 또는 거대 기업만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역시도 첫 번째 애플 컴퓨터는 매우 날 것의 상태였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처음엔 빠른 검증이 있었고 세기에 남을 만한 엄청난 크기의 PMF을 찾았기에 가능한 다음 행보였다. 그리고 처음 컴퓨터를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존 Legacy 제품을 재발명하는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는 모두 마켓사이즈가 매우 큰 시장들이었다.

  • iPod → mp3 player 재발명
  • iPhone → 휴대폰 재발명
  • iTunes → 레코드점의 재발명
  • iPad → 휴대용 컴퓨터의 재발명
  • Apple Watch → 시계의 재발명

이 처방은 잘 못 활용하면 독약이 된다. 필자를 포함한 디자이너들은 완벽주의와 스티브 잡스가 버무려져서… 그것이 디자이너의 가장 큰 덕목이라 여기며 디자인했고 프로젝트가 어떤 스테이지에 있든, 돈이 있든 없든 프로젝트 기한이 코앞일 때도 완벽주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경험이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Coverflow는 최애 UX로 꼽는다.. 애플짱

아마존 디자인

스티브잡스 디자인 축 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혼자 즐겨 하는 비유인데 적절한 예시인 것 같아서 아마존 디자인이라고 명명했다. 아마존 또는 AWS를 써보면 가격 경쟁력과 함께 정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준다는 인상을 받는다. 제품이 UX 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완벽한 상태는 아니게 보일 수는 있어도 그 가치가 너무 커서 결론으로 가는 장벽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라고 할까. AWS는 물론 개발자를 위한 제품이라 논외로 한다고 해도 아마존 역시도 세련된 디자인을 한다거나 UX가 말도 안 되게 편리하거나 한 부분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배송 편의, 가격 경쟁력을 가진 e-commerce의 관점에서 보면 압도적인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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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Design, UX Design은 사실 고퀄이라고 얘기하긴 힘들다. 하지만 기업가치가…?

디자인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서비스는 성공할 수 있고, 오히려 완벽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비지니스의 속도를 늦춘다면 좋은 디자이너로 평가받기는 힘들 것이다.

초기의 페이스북, Material Design 이전의 구글을 생각해보라. 페이스북에서 멘션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친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구에게 포스트를 알리는 가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불편한 멘션 사용법이 SNS의 기본 기능으로 정의되기도 했다. 구글은 뭐… 디자인을 논하기엔 제품 자체의 심플함이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Slack도 마찬가지다. 초기 Slack은 개발 친화적인 제품이었기 때문에 몇몇 사용법은 꽤 어렵기도 하다. workspace 로그인은 여전히 헷갈린다.

이처럼 디자인, 사용자 편의 관점이 아닌 제품 관점에서 PMF를 찾는 디자인이 초기엔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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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 피드는 우리 눈동자를 꽤 바쁘게 했다.

기업에서 디자이너의 가치

기업은 장점은 스타트업 보다는 좀 더 멀리 보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인 것에 반해 역할이 세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에게 거는 기대.. 라는 것이 오히려 제한적이다. 상대적으로 시간과 돈이 많다는 것은 개개인이 일정 이상의 역량만 발휘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큰 상태이기 때문이다. — 물론 이 함정 때문에 더 자주 실패하기도 한다. —

디자이너에게 거는 기대는 대부분 불편하지 않게 화면 디자인을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잘하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 멋지게 그려진 화면과 쾌적한 UX 경험은 선택적일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디자이너가 PMF를 함께 찾는다는 느낌은 가지기 힘들거나, 중요한 문제 정의(특히 사업적인)가 다른 사람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운 좋게 PMF가 딱 맞는 서비스를 디자인하여 제품이 성공하면 디자이너도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개의 어쭙잖은 경우라면 대체로 연봉 협상에서 증명할 수 없는 디자인 성과에 대해 어필하다가 낙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CEO 정도 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거나 디자인에 대해 대단한 안목을 가져야만 역량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하지만 안목이 있는 경우라도 적절한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의 가치

기업도 속도를 중요시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속도는 생명과도 같다. ‘모든 조건을 팽개치고 빠르게’는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덕목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빠르게 고퀄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과 빠르게 증명 가능한 수준의 디자인을 만드는 과정은 아예 다르다. 특히 고퀄 디자인이 개발 의존도가 큰 형태라면 더욱 그렇다. 디자이너만 빠르게 만든다고 해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니다.

MVP가 스타트업에 중요한 이유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는 것이 PMF를 빠르게 찾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도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야 하고 타임라인에 맞게 완수할 수 있게 디자인 해야 한다. 이는 포트폴리오 한 칸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PMF를 팀과 함께 빠르게 찾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Product Designer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UI Design, UX Design을 당연히 포함하고 그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도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방법은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문구 변경일 수도 있고. 구글 설문지를 써서 개발 비용을 낮춘다던가 하는 것들도 모두 포함된다.

결론

PMF를 찾는 과정이 제품이 가야 할 최종 목적이라고 본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게 가설을 검증하면서 PMF를 찾고 제품에 임팩트 있는 가치를 더해 줄 수 있는 가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미 PMF를 찾은 서비스를 디자인하게 된다면 그 영역이 점점 좁혀져 있거나 세분화 되어있을 것이고. (PMF를 찾은 뒤에는 시스템화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예를 들면 빅맥 레시피를 개발하고 고객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맛을 내면서도 원가 절감을 하거나 전문가가 아닌 아무나가 만들어도 같은 맛을 내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처럼)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그 가치도 그리 높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디자이너로 가치를 증명하고 싶거나 성장하고 싶다면 PMF를 찾는 과정에 있는 그 가능성이 큰 팀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의 경우 이런 디자인 외적인 역학 관계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부연

Q.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은 PMF을 찾는 데 도움이 안되나?

좋은 디자인, 편리한 UX 자체가 PMF의 열쇠가 되는 경우는 매우 많다. 이것들을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더 적은 비용으로도 같은 가치를 줄 수 있다면 그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브랜드, 마케팅, 제품 디자인, 제품 개발이 애플 급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게 시장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라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사실 애플 정도면 제품 몇 개 말아먹어도 괜찮다. 한 두 번 말아 먹더라도 확신만 있다면 지속적인 Iteration으로 시장이 원하는 제품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체력이 있으면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 체력이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확신이 없으면 한 번 말아먹으면 안 하려고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고려할 것들이 너무 많으면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시장 기회를 놓쳐버리기도 한다.

Q. 스타트업에서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방법은?

최근 스타트업에서 PO, PM 역할은 있어도 기획자의 역할은 없는 팀도 꽤 많아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기획자가 하던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나누어 가진 것이 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대신 기획자가 다른 직군에게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장표를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없기 때문에 좀 더 Design, Engineer의 관점에서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고 어떤 것이 우리 팀의 상태에 맞는 해결 방법인지 빠르게 제안할 수 있다.

또한 요즘 주요 스타트업들을 필두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이유는 제품에서 시각 언어의 일관성을 갖추는 것과 함께 어느정도 보장된 퀄리티를 빠르게 만들기 위함이다. 스타트업에서는 후자의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이는 스타트업의 스테이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함께 PMF를 찾으면서 디자이너로써 가치를 증명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몸담고 있는 flex.team에서 Product Designer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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